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I've read another book of Aristotle's, Politika, but did not know Nicomachean Ethics was the predecessor of Politika. I was much more patient with Nicomachean Ethics than I was with Politika. Aristotle's preferred method of developing his theories always makes use of his contemporaries and the mythological events that modern readers cannot really connect with.
Anyways, it is amazing that a political theorist's book on Ethics can still be read by readers nowadays to teach them great lessons on how to live, and ultimately, be happy.
Yes, the book's grand theme is "how to be happy," a simple question to which hardly anybody can ever dare to produce an answer. Aristotle breezes through by being ever so precise, and exhaustive.
Aristotle's first assumption is this: Humans are social beings who spend their lives to achieve greatness.
So he starts from this simple assumption. Humans are the ultimate beings encompassing the qualities of both plants and animals; we can grow like plants, and act and move like animals. But the quality that makes humans surpass these other beings is our spiritual power - Our willingness to live analytically, with our rationalism. So the greatness we strive to achieve must be something spiritual.
Then, what is greatness? Rather, how do we achieve it?
Aristotle says it's being the mean between the extremes. Extremes are by nature easily corrupted, and thereby morally weak. Keeping the Golden Mean between, for example, Anger and listlessness, or decadence and miserliness. Keeping this fine line of Golden Mean can help us not to be swayed by animalistic wants and transient desires. It's not only being in accordance with greatest human virtues, but is also being the closest to gods.
But, why is keeping the Golden Mean so important and imperative?
It is because keeping this middle ground can provide humans with the best opportunities to live with highest moral virtues. One acts in such a way only because it is appropriate and the best possible action.
Aristotle also talks about the best life we can possibly lead. That is life of intellectual pleasure. This goes back to the human's greatness that plants and animals do not posses.
Abraxas
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넋두리-고통과 회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주인공 라스콜리노프가 저질렀던 살인에서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회개에 이르렀는지에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고통이다.
라스콜리노프가 시베리아 수감소에서 고통을 받으며 비로소 회개를 하는 모습의 메세지는 간단명료하다.
회개는 고통을 필요로 한다. 아니, 회개는 고통의 결과물이다. 회개는 외부의 영향에 의존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이며, 고통의 정당화다.
내가 요즘 가지는 만남은 필연적으로, 또 어찌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별을 위한 것이다보니, 인간관계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마지막'이라는 개념 앞에 어린아이가 되기 마련이기에, 고통이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상을 떠나야한다는 것이 원통하다. 이러한 '고통'속에서 나에게도 회개는 찾아왔다. 고통으로 깨닫는 인간관계의 소중함은 곧 일상의 소홀함을 상기시키고, 이 소홀함과 고통의 괴리감에서 비로소 회개를 찾게 되었다.
내 고통을 정당화하는 회개는 이것이다:
다시 돌아오면 가장 먼사람을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잃지 않으리라.
2012년 1월 25일 수요일
눈을 뜨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쌍용차노조의 농성에 관한 언론의 왜곡은 우리나라 주류 언론이(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기위해 일단 조선일보라고 하자) 얼마나 후진적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예이다. 아니, 후진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예술적인 왜곡이다. 이 정도 소설을 쓸 실력이면 러시아문학의 아성도 넘사벽의 세계는 아니다... 그런데 그 필력이, 신출귀몰한 상상력이 사실과 인과율에 의거한 분석만을 전달해야하는 언론에 쓰여진다니, 그것도 권력을 위해. 이것을 보고 화가 난다면,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정보를 자의적으로 걸러내고,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필수이다. 그것이 배부른 돼지가 아닌 약간은 귀찮은(이것은 배고플 정도의 수고는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되는 길일테니.
하여튼, 꽤 오랜 시간 공들여서 찾은 링크와 동영상들이니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조선일보기사
쌍용차노사의 타협에 관한 신문이다. 강기갑, 이정희 의원은 '무리한'주장으로 노사간의 타협을 늦춘 방해물로 비추어진다. 그리고 노조는 마치 식량도 충분한데 엄살피운 것처럼 묘사된다.
조선일보의 만평 (강기갑의원 공격)
쌍용차직원 아내들이 강기갑국회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제발 떠나달라, 외부세력은 개입하지 말아달라, 이렇게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기갑의원은 이를 거절했다. 메세지가 심플하다: 안타까운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더러운 국회의원 정도?
이쯤되면 거의다 속는다. 나도 거의 넘어갔다...
다음은 오마이뉴스의 같은 사건에 대한 기사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와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 확연하다.
훨씬 설득력있다고 나는 느끼지만, 여기까지는 동전의 앞과 뒷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강창덕 경남민언련
쌍용차노조는 해고 후 해고당한 농성파와, 해고당하지 않고 정규직원으로 출근을 계속한 '구사파'으로 나뉘었다. 저 무릎꿇은 분들은, 역겹게도, 해고당하지않은 정규직원와이프들이다. 뭐 쌍용차사 쪽에서 주문했을 수도 있고, 숨통이 조여와서 자발적으로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강기갑의원이 바라는대로 경찰의 살인진압이 이슈가 되고 멈춰지게 된다면 타협은 훨씬더 오랜시간을 필요로 할테니까. 지들을 '구사대'라고 부르던데, 유튜브에 구사대를 검색해보면 어떤 부류인지 견적이 나온다(무협영화보는 듯 하다). 동료직원들은 법적책임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자기들 살겠다고 와이프들 동원해서 알량한 쇼를 하다니...
처음부터 강기갑, 이정희의원이 저렇게 시위를 한 이유는 농성을 하고있는 쌍용차노조가 과도진압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였다. 그 과도함을 알려면 다음 동영상을 봐야한다...
무슨 중세시대 공성전도 아니고 저게 21세기에 일어난다는 것이 가슴아프다.
왜, 총도 쏘고 미사일도 날리지, 씨바.
그럼 여기서 문제: 여기서 강기갑, 이정희 의원에게 쌍욕을 퍼붓는 저 노조는 해고당한 쪽일까, 정규직원들일까? (힌트: 해고당한 쪽은 위 동영상처럼 농성하고 있다.)
요즘은 정보가 귀한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과한 시대다. 무엇이 진실인지 아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가 예전에는 단지 눈을 뜰 수 없어서 였다면, 이제는 눈 앞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보여서이다. 우리가 숨쉬고 먹고자고싸는, 겨우 생물학적인 개념의 인간에 턱걸이하는 그런 호모 사피엔스로 남을 수는 없다. 그런 것을 가끔씩, 아주 가끔은 초월한, 정신적으로 숭고한 인간이라면,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필연적으로 입체적인 주장들을 들어보고 옳은 그림을 자발적으로 그려나가는 것이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의무이고 권리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정답은 '정규직원'이다.
샤족. 아 시바 동영상 보니까 마음아프다. 근데 이거는 경찰들을 욕할 것이 아니다. 저런 '전시상황'에서 눈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동물성이다. 전쟁나면 군인 욕하나? 경찰이 군인이 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커맨드센터를 찾아야지...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읽으며...
지금 읽고있는 <꿈의 해석>을 진열장에서 고를 때, 초록색과 하얀색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들이 눈에 띄었다. 하얀색 번역본의 경우 각주조차 없는 한자가 마구 쓰여있어서 펼쳐보자마자 포기했고, 초록색 번역본은 사려했지만, 아무래도 입대 전까지 다 읽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지금 읽고있는 가장 짧은 버젼을 사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글을 보고있는데 의미파악은 전혀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늘 <꿈의 해석>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100쪽 넘어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번역이 어색해서 그런지 눈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전자겠지만 나는 후자이길 내심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짜증났던 것 중 하나는 길고, 주어나 목적어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분명치 않은 문장들이였다. 하지만, 니체의 <Beyond Good and Evil>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기에, 생각해보니 굳이 번역 탓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내일은 집중이 더 잘되는 조용한 곳에서 독서를 해야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지하철 안만한 독서실이 존재하긴 한가?)
책 자체의 내용은-1/3정도 읽은 현재-흥미로운 편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읽을 때 만큼 나자신을 집중하게 채찍질 할 필요가 심하지는 않아서 좋다. 내가 살면서 여러번 접한 꿈에 관한 내용이라서 공감대도 쉽게 형성되는 편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생생한 체험에서 금방 희미한 아지랑이가 되고마는 꿈을 연구한다니, 정말 대단도 하시다. (참고로 프로이트는 꿈을 금방 잊어버리는 이유가 일어나서 낮시간동안의 심리적 형태와 삶에 꿈속의 심리변화와 '꿈의 재료'가 조화되지 않음으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구름조각처럼"ㅋㅋㅋㅋ 중요한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꿈에 관한 기억이 사라진다고한다-프로이트, 왜 이렇게 센티해!)
프로이트가 코카인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래서 책 내용에 정신나간 소리가 없는지 보려고 더 집중하려 노력했는데, 오히려 자기자신의 사고나 자아를 상당히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꿈과 그에 따른 분석이 여러번 소개되는데,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독자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의 감정, 동정(특히 리비도), 그리고 열등의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렇게 자기자신의 사고를 객관화하려고 한 이유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꿈의 해석은 개인이 집행할 수 밖에 없는 형태이다. 꿈의 해석은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재료'들과 심리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꿈에서 나오는 재료와 친숙한 것은 자신의 자아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꿈해석은 꿈에 나오는 모든 재료를 기억하는 자신밖에 집행할 수 없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개인의 괴팍한 수기가 아닌 과학적이고 인과율에 의존하는 분석이자 논문이길 바랬을 것이다. 이 점에서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차적 조건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가 상당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목이 있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꿈분석을 위해서는 환자가 자신의 자아표현억제를 스스로 멈춰야한다고 한다.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성이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미 애인 있다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하지 않는 거절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원래 이유가 아닌 거짓 이유를 듦으로써 상대방-혹은 자신-의 도덕성,윤리, 혹은 심리를 해치지 않는 방어체계가 자아에 내재되어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일부러 잊는 것,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시되는 동정을 억누르는 것은 이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잠재의식이 이성이란 검문소를 거치기도 전에 걸러내는 경우가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이런 잠재의식의 자아표현억제를 멈추는 것을 연습을 통해 얻었다고하며, 나는 이것이 그가 <꿈의 해석>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솔직하게 받아드리고 이것을 재료로 자신을 분석했다는 것, 상당히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수치심과 열등감의 극복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천재중 태반은 미친놈이다-머글의 눈에는
아 일기 비슷하게 쓰려고 했는데 실수로 독후감을 써버렸다...... 뒷 이야기를 북리뷰에 써야겠네
책을 읽다보면 글을 보고있는데 의미파악은 전혀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늘 <꿈의 해석>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100쪽 넘어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번역이 어색해서 그런지 눈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전자겠지만 나는 후자이길 내심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짜증났던 것 중 하나는 길고, 주어나 목적어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분명치 않은 문장들이였다. 하지만, 니체의 <Beyond Good and Evil>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기에, 생각해보니 굳이 번역 탓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내일은 집중이 더 잘되는 조용한 곳에서 독서를 해야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지하철 안만한 독서실이 존재하긴 한가?)
책 자체의 내용은-1/3정도 읽은 현재-흥미로운 편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읽을 때 만큼 나자신을 집중하게 채찍질 할 필요가 심하지는 않아서 좋다. 내가 살면서 여러번 접한 꿈에 관한 내용이라서 공감대도 쉽게 형성되는 편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생생한 체험에서 금방 희미한 아지랑이가 되고마는 꿈을 연구한다니, 정말 대단도 하시다. (참고로 프로이트는 꿈을 금방 잊어버리는 이유가 일어나서 낮시간동안의 심리적 형태와 삶에 꿈속의 심리변화와 '꿈의 재료'가 조화되지 않음으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구름조각처럼"ㅋㅋㅋㅋ 중요한 상황을 제외한 나머지 꿈에 관한 기억이 사라진다고한다-프로이트, 왜 이렇게 센티해!)
프로이트가 코카인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래서 책 내용에 정신나간 소리가 없는지 보려고 더 집중하려 노력했는데, 오히려 자기자신의 사고나 자아를 상당히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꿈과 그에 따른 분석이 여러번 소개되는데,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독자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의 감정, 동정(특히 리비도), 그리고 열등의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이렇게 자기자신의 사고를 객관화하려고 한 이유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꿈의 해석은 개인이 집행할 수 밖에 없는 형태이다. 꿈의 해석은 자신의 삶에서 나오는 '재료'들과 심리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지는데, 꿈에서 나오는 재료와 친숙한 것은 자신의 자아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꿈해석은 꿈에 나오는 모든 재료를 기억하는 자신밖에 집행할 수 없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개인의 괴팍한 수기가 아닌 과학적이고 인과율에 의존하는 분석이자 논문이길 바랬을 것이다. 이 점에서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차적 조건일지도 모른다.
저 시가안에 코카인을 같이 말았을 수도 있다 ㅋㅋㅋㅋ |
하여간 천재중 태반은 미친놈이다-머글의 눈에는
아 일기 비슷하게 쓰려고 했는데 실수로 독후감을 써버렸다...... 뒷 이야기를 북리뷰에 써야겠네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13. The Picture of Dorian Gray-Oscar Wilde
'How sad it is!', murmured Dorian Gray, with his eyes still fixed upon his own portrait. 'How sad it is! I shall grow old, and horrible, and dreadful. But this picture will remain always young. It will never be older than this particular day of June.... If it were only the other way! If it were I who was to be always young, and the picture that was to grow old! For that-for that-I would give everything! Yes, there is nothing in the whole world I would not give! I would give my soul for that!'
-The Picture of Dorian Gray, Oscar Wilde
I have written about two works by Nietzsche, and Machiavelli's The Prince. These books underline the importance, or the value, of reality over morality. Freedom over conformity. And individuality over culture. Maybe this book is Oscar Wilde's response to such stance in life. Dorian Gray-upon saying the quote above-really has it all. An Adonis deep into hedonism, influenced by Lord Henry, and in turn influencing others. But what makes him get sick of his hedonistic decadence, or his being a aesthete?
The life of Dorian Gray leads him to want many things. But what makes him desire innocence eventually? It's hard to believe that the sole reason is his conformity with Victorian London society; are the repercussions for his misdeeds the only reasons for his wanting to change? I conclude for now that it is because of his surrender to the ephemerality of pleasure, thereby the ephemerality-destined hollowness-of hedonism.
He reduces to tears when he finds out that James Vane is shot to death. This exoneration from the revenge upon his sins obviously moves him greatly. Although he tries to adopt Lord Henry's approach on life,-carefree and pleasure-seeking-this emotional response seems to shed light on the fact that no one really is completely free from his culture and society. The freedom is unequivocally infringed to certain extent once one decides to live in a city. He may not be afraid of dying, but he is not truly free as he once was before the portrait aged on behalf of him, before he met Lord Henry, before he was corrupted.
I really liked the ending where Dorian Gray dies upon trying to murder the portrait. And it really is exquisite that the knife that did away Basil Hallward was used in this attempted murder. He repeats the exactly same action-plunging knife into both Basil and the portrait- and takes away both Basil's and his own lives. It's almost as tragically beautiful as Sibyl's suicide-if you can say any death can assume some kind of poetic symbolism.
It's funny how the novel talks extensively about influences, corruption, repercussions of pursuit of beauty and pleasure, and hedonism, yet the novel starts out with this passage, almost a sonnet:
The moral life of man forms part of the subject-matter of the artist, but the morality of art consists in the perfect use of an imperfect medium. No artist desires to prove anything. Even things that are true can be proved.
Can this novel really not influence readers? And as for corruption and whatnot:
There is no such thing as a moral or an immoral book.Oscar Wilde, from the beginning, tells the story, without assuming any responsibility of the potential influences of the novel upon the readers. Its stance on morality and hedonism are mere device to create this fabulous character Dorian Gray. Or, is it...?
Books are well written, or badly written. That is all.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내가 FTA를 반대하는 이유
김어준의 뉴욕타임즈 149-2회
13:30~14:15 필히 청취하시길
Freedom 자유 vs. Equality 평등
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 vs. Egalitarian 평등주의
대한민국 FTA 법률책 700페이지 vs. 미국 FTA 법률책 80 페이지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들과 그 수와 동일한 자아가 있다. 살아온 환경, 문화, 그리고 믿음에 따라 그 자아는, 마치 석고상처럼, 유니크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난 믿는다: 세상엔 인구 수 만큼 너무나 개인적이고, unique 한 자아가 있다.
여기서 당연히 생기는 문제가 있다 - 경제학, 철학, 사회생물학 등등 모든 인문학은 인간은 함께 살아야 자신의 가치를 다할 수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했다 - 함께 사는 인간은 남과 더불어 가는 세상에서 필연적인 타협을 해야한다. 왜냐? 우리는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기에. 이것은 우리가 다른 qualities, values, 그리고 ideals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나오는 한가지 경쟁구도가 위에 명시한 Freedom vs. Equality, 혹 사회구도로 보자면, Libertarian vs. Egalitarian 이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인간끼리의 갈등은 이 두가지 이상의 innate 한 상호배타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싶다! 이제 이 철학적이며 밑도 끝도없는 발언을 FTA에 비추어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살펴보자.
FTA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쟁점은 이거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기본적으로 다른 성향의 국가이다. 각 국가의 역사와 underlying value가 화성과 목성에서 온 것 만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의 법이 extreme libertarian 이라면 (한국에 비해선 이것은 비약이 아니다!) 한국의 법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사회적인 측면이 훨씬 더 가미된 Egalitarian 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럼 여기서 자연스레 우리가 물어야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Libertarianism 과 Egalitarianism은 융합이 가능한가? 이것 물과 기름이 섞이는게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다. Libertarianism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장려한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느냐? 당연히 그의 소유물이다 (John Locke이 한 말인데 난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는 무엇인가?>에서만 읽고나서 하는 말이니 정확성을 개런티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두리뭉실하게 보자면, Libertarianism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소유하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은 재산은 그의 것이다. 여기서 사실 보수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다 - 감세, 무역자유화 등의 socialism의 최소화, 혹은 완전한 무효화.
그렇다면 Egalitarianism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및 장려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하고 안하는 흑백논리가 아닌, 무엇이 더 중요한가의 차이이다. Egalitarianism은 John Rawls의 concept of fairness랑 비슷하달까? Egalitarianism은 공동체에 개인과 준하는 비중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패러다임에서는 징세, 비자율적인 무역체계등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기보단 (사실이지만) 공동체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자유지상주의에서 약화될 수 있는 공평함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럼 예를 하나 들어보자. 대형마트가 당신 집 앞에 들어서려고 한다. 근데, 집 앞에 구멍가게가 대형마트와 견줄만한 경쟁력이 있을 수, 절대 없다. 대한민국에서 나 3학년 때 쯤 (한 2000년) 이것 때문에 말이 졸라 많았다. 어쨌든 이게 불법이긴 한데, 그럼 이게 Libertarian의 입장에서 옳은 결정인가? 절대 아니다! 대형마트도 한 개인의 소유일테고, 뭐 상장되어 주주들이 있으면 주주들의 소유일텐데, 그들이 거기에 대형마트를 세울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 예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Libertarianism과 Egalitarianism은 반대방향의 이상향을 향해 달린다. FTA는 이 두 주자를 줄로 묶는다. 그럼 뛰다가 결국엔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미국은 상호배타적인 사회이상향이 있다는 전제하에 FTA 자체를 보자면 이렇다. FTA조약은 우리나라 헌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 (FTA에 나와있다... 뉴욕타임즈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건 씨바, 강화도조약이랑 뭐가 다르냐!) 근데 real bomber 는 이거다. 미국에서 FTA 조약의 효력은 연방법의 밑 - 즉 그냥 종이쪼가리이자 일개 조약이다 -에 위치하며, 졸라 용의주도하게도 주법에 간섭할 수 없고, 그 효력을 잃는다.... 그럼 미국인 입장에서 FTA는 엄청 circumvent - 피해가다의 간지나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영어로 대체한다 - 하기 쉽다. 솔직히 변호사 돈 좀 주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근데 우리나라에서 FTA는 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왕정체제는 점령하긴 어렵지만 점령하고나면 그 통일성에 의해 점령 후 통치가 쉽다. 하지만, 공화국의 경우 점령은, 통일성의 부재로, 쉬울지 몰라도, 점령하고나서 통치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헌법에 지배받는 왕정체제와 같고, 미국은 연방법 및 각각 주의 법이 존재하는 공화국과 같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FTA에 지배받는 순간, 마키아벨리의 왕정체제와 같이, 통치하기 존나 쉬운 종이쪼가리헌법이 된다. 그에 반해 미국의 법은 공화국과 같아서 FTA의 효력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절대 같을 수 없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사회적, 공동체적 이상향을 가진 두 나라가 그냥 수박 겉핥기식의 검토를 거친 뒤 성사시킬만한 것이 아니다. 몇년의 검토과정을 통한 협상도 사실 FTA의 실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반대한다. FTA, 정말 개나 줘야된다.
2012년 1월 19일 목요일
SOPA and my thoughts
Below is the link to TED's talk on SOPA:
http://www.ted.com/talks/defend_our_freedom_to_share_or_why_sopa_is_a_bad_idea.html
SOPA makes me sad in two ways:
http://www.ted.com/talks/defend_our_freedom_to_share_or_why_sopa_is_a_bad_idea.html
SOPA makes me sad in two ways:
- The obvious one is the possible enactment of SOPA, which will pretty much put an end to free internet; in a larger sense, infringing freedom of speech.
- Second, and a subtle one, perhaps, is the incessant class struggle that has been witnessed since the dawn of civilization; settlers vs. hunter-gatherers, warriors/nobles vs. workers, aristocrats vs. proletariats, finally getting their newest labels, capitalists vs. humble consumers
But what happened when church oppressed its people, and aristocrats extorted from the proletariats is already known to us through history; people could never be completely tamed - standing ovation goes to Christianity as it managed to fool its minions for quite a long time. But even church, mighty God, couldn't silence the devout people. Enlightenment through science, technology, philosophy - knowledge as a whole - could not have been stopped even by the concept as o-so-fantastic as God himself (I find referring to God as him very egotistic of mankind - I recommend this movie called The Name of the Roses... For Christians who are mortified by my blasphemy, I recommend Nietzsche's Antichrist. Although he despises Christianity, he is quite fond of Jesus as a person).
Jesus Christ Superstar Literally that's too pretty |
Mankind's knowledge is what will free us from all these shackles - religions, morality, class struggles - that it created millennia ago. Then they might have been necessary, or - as Nietzsche puts it - convenient for the higher power to control the slaves or the poor. But now, everyone sees too much and knows too much to be controlled, silenced, and blindfolded. As long as we can listen to everything with a grain of salt. SOPA presents only another of these struggles and we won't be tamed; it's impossible. The fight against media is a way to be free from one of the shackles - shackles that hold us from apotheosis.
I love mankind too much to rely on these obsolete things - let's keep on learning, understanding, analyzing, accepting, rejecting, and creating. Should SOPA stand on its way, it must be, and invariably will be, rem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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